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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일본군 무덤과 교토 귀무덤 돌봐온 민초들의 ‘인류애’ 스토리, 교과서에 싣자

기사승인 2022.09.29  09: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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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수상이 24일 오전 명량해전 당시 전사한 일본 수군 유해가 안장된 전남 진도군 고군면 내동마을 왜덕산(倭德山)에서 있은 위령제에 참석했다. 그는 추모사에서 “일본이 한국에 아주 큰 고난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다. 사죄는 고통을 당한 쪽에서 ‘이제 그만해도 됩니다’고 말할 때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또 “425년 전 목숨을 잃은 일본 수군들을 진도 주민들이 묻어줬다. 생명 앞에서는 적도 아군도 없이 맞아준 사실을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잊어서는 안된다”고도 했다.

전 일본 수상, 4백여년 일본군 묘 돌봐온 주민에 감사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듯이 일본군 묘는 1597년 명량해전에서 숨진 일본 수군 시신들이 진도 고군면 해안으로 밀려오자 주민들이 ‘시체는 적이 아니다’며 수습해 양지바른 산자락에 묻어주면서 생겼다. ‘왜인들에게 덕을 베풀었다’해서 왜덕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2004년 박주언 진도문화원장에 의해 알려진 뒤 일본 향토사학자와 후손들의 방문이 이어졌고, 진도문화원과 일본 시민단체 교토평화회가 공동으로 위령제를 지내오고 있다.

일본 교토 등 다섯 곳에는 임진왜란때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가 묻어둔 귀무덤(혹은 이비총·耳鼻塚)이 있다. 12만6천명 분이 묻혀있다고 한다. 이곳도 오랫동안 방치되어 오다가 뜻있는 시민단체에 의해 보존되고 진혼제가 치러지고 있다.

비판 무릅쓰고 사죄방문한 하토야마는 양심적이고 용기있는 일본인

하토야마 전 수상은 이러한 양국의 인류애에 대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선생은 다름 아닌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24일 정읍 태인의 3·1운동 기념탑에도 헌화도 했다. 이에 앞서 2015년 8월에는 서울 서대문형무소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였고, 국내 원폭 피해자들을 찾아 사죄했다.

한국을 찾아 사죄하는 일본인은 흔치 않다. 과거 식민지정책과 침략전쟁을 통해 저지른 과오를 제대로 교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9년에 필자는 일본 외무성 수습 사무관을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5·18묘지(3묘역) 등으로 안내한 적이 있었다. 5·18은 일본에서도 ‘광주사건’이라고 보도하여 알고 있었으나 청소년들이 독립을 외치며 봉기한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인들의 비판을 무릅쓰면서까지 사죄방문한 하토야마는 진정 양심적이며 용기있는 일본인이었다.

자신의 ‘과오’는 살피지 않고 ‘원폭 피해국’만 강조하는 일본정부

히로시마 피폭지점을 ‘평화기념공원’이라고 이름 짓고 미국의 대통령까지 불러다가 참배하는 이벤트도 의심의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1945년 8월 6일 이곳에 원자폭탄을 떨어트린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본은 패전이 짙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의미 없이 목숨을 던지는 일을 ‘옥쇄’라고 미화(美化)해가며 항전을 계속했다. 하여 미군과 아시아지역 주민들의 고통과 피해를 줄이고자 불가피하게 취한 조치였다. 따라서 원폭은 일본이 자초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범국가로서 끊임없이 반성하기는 커녕 자신이 ‘피해국’임을 강조하는 행세만 하고 있다. 일본인과 함께 원폭으로 피해를 본 조선인에 대한 위령비도 평화공원 밖에 설치를 허용했다가 뒤늦게 공원 안으로 옮겼다.

독일의 브란트 수상은 1970년 폴란드 유태인 희생자 추모탑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했다. 이후 지금까지 독일의 많은 정치인들이 희생지역을 사죄방문하고 있다. 피해 유태인들에 대한 배상도 단 한 차례로 끝나는 게 아니라 꾸준히 계속돼 올해에도 독일정부가 배상 내용을 발표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의 어느 정치인이 일본군이 학살사건을 저질렀던 중국의 난징이나 인체실험을 했던 731부대에 사죄방문을 했던가? 하토야마 외에 어떤 일본 정치인이 독립운동가들이 갇혔던 서대문형무소나,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계신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 사죄방문 하였던가? ‘돈’ 하나만으로 반성과 사죄를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오히려 반성은 커녕 소녀상 앞에서 이를 폄훼하는 기념사진을 찍거나, 세계 곳곳에서 설치를 방해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21일 미국 뉴욕에서 있은 한일정상회담은 만남에만 의미를 두었을 뿐 해결이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었다. 일본군 위안부와 징용노동자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려는 한국측 입장과, 모든 배상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되었다고 고집하는 일본측 입장에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한-일 民草들의 보이지 않는 ‘인류애’부터 선양해야

진도 왜덕산 일본군 묘와 일본의 귀무덤을 보살펴 온 것은 두 나라 민초들이었다. 그들은 정치인과는 다르게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인 ‘인륜’을 조용히 실천해 왔다.

이제는 미래를 열어갈 청소년들에게 밝은 한일관계를 넘겨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진도의 왜덕산 묘지와 일본의 귀무덤을 보살펴 온 두 나라 민초들의 훈훈한 이야기부터 우선 교과서에 실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청소년들이라도 우호적인 관계를 보다 확대해 가도록 했으면 좋겠다.

김성(시사평론가)

김성 소장 machmj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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