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시행령’ 갈등, 이번엔 결판내자

정권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시행령’ 갈등, 이번엔 결판내자

  • 기자명 김성 소장
  • 입력 2022.06.23 09:23
  • 수정 2022.06.2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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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 등이 14일 행정부의 법 제정을 견제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국회 상임위원회는 대통령령 및 총리령·부령이 법률의 취지나 내용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은 정부의 시행령이 상위법인 법률을 위반했는지 국회가 검토만 할 수 있었는데 개정안은 국회가 시행령 등에 직접 관여하도록 한 것이다.

국회법 개정안 놓고 與 ‘정부완박’ VS 野 ‘국회 패싱’ 주장

야당이 이 개정안을 낸 것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정부조직법(법률)을 개정하지 않고 대신 하위법인 시행령(대통령령)만 고쳐 법무부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하여 인사혁신처장의 인사검증 권한을 법무부로 넘기는 등 법무부의 기능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행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한 ‘꼼수입법’”이라며 “‘국회 패싱’을 막기 위해 개정안을 냈다”고 주장하는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시행령은 정부의 고유권한”이라며 “민주당이 식물정부를 만들려는 ‘정부완박’”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헌법은 ‘법률은 국회가 제정하고, 법률에 따른 부수적인 사항은 시행령(대통령령·총리령·부령)으로 행정부가 제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행정입법’이라고도 하는데 시행령을 만들더라도 법률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있다. 그런데 정부의 업무가 확대되면서 법률의 범위를 넘어서는 시행령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정권이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법률을 위반하는 시행령을 무리하게 제정하는 일까지 빚어졌다. 이는 국민의 일상생활을 제약하거나 인권을 침해하기까지 했다. 국회 법제실이 2011~2013년에 제정된 법안 중 ‘부적절한 행정입법’ 사례를 조사해 보았더니 수정하거나 변경해야 할 조문이 534건이나 됐다고 보고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국회 “시행령 견제” - 정부 “삼권분립 위반” 25년째 결론 못내려

‘시행령’을 둘러싼 ‘국회법 개정’ 논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야당은 ‘입법권의 정상화’라며 개정을 요구하고, 여당은 ‘삼권분립 위반’이라는 명분으로 개정을 반대하면서 25년간 대립해 왔다.

특히 2015년 ‘국회법 개정’을 둘러싼 정쟁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사퇴하는 등 정치권에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현안은 공무원연금법을 개정하는 일과 1년 전에 침몰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일이었다. 이 시행령 개정을 위해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제시한 ‘국회법 개정안’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수용했다.

국회는 5월 29일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법 등과 함께 국회법 개정안을 재석 244명에 찬성 211명 반대 11명으로 통과시켰다. 반대한 의원들은 ‘친박’계였다. 개정된 국회법 내용은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 취지나 내용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하고, 수정·변경 요구를 받은 행정기관은 이를 처리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2015년 국회와 대통령의 갈등, 他山之石 삼아야

국회 의결 후 청와대는 “삼권분립 위반”이라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의사를 밝혔고, 집권당인 새누리당 내에서는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규탄이 쏟아져 나왔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여당과 청와대가 냉각기를 갖도록 하기 위해 통상 본회의 의결 1주일 후 정부에 전달하던 법안을 17일 늦은 6월 15일에 보내기로 했다. 또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양당의 동의를 받아 ‘요구’라는 단어를 ‘요청’으로 완화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10일 뒤인 25일 국무회의서 국회법 재의요구안을 의결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여당은 재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고 종결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정의화 의장은 본회의에서 재의 절차를 밟겠다고 ‘원칙론’을 고수했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국회의원 2/3 이상 찬성으로 통과시킨 법안이므로 국희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7월 6일 재의 절차를 밟기 위해서 본회의가 열렸다. 의결을 위해서는 전체 의석 298명(새누리당 160명, 새정치민주연합 130명, 정의당 5명, 무소속 3명) 가운데 과반인 149명의 출석이 필요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의원들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고, 야당은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의원 등을 포함해 130명만 참여해 의사정족수 미달로 재의안 처리는 무산되고 말았다. 이튿날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의 사퇴권고에 따라 사퇴했다.

2015년의 국회법 개정안은 입법부의 노력(자구 수정 등)에도 불구하고 타협을 이루지 못한 채 행정부(대통령)의 강력한 거부권 행사로 채택되지 못했다. 또 끝내는 박 대통령이 탄핵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일 하나 때문에 가져온 결과는 아니었지만 행정부와 입법부가 조정과 타협을 하지 못할 경우 정권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입법 구체화-의원입법-사법부 판결로 ‘논쟁’ 끝내길

그렇다면 시행령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첫째, 국회는 입법과정에서 법률에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 법률의 뼈대만 세우고 구체적인 내용을 행정부에 위임하는 바람에 ‘법 위의 시행령’을 자초한 것이다.

둘째, 의원입법을 보다 활성화 해야한다.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 가운데 상당수는 외양으로는 국회의원이 발의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작성한 법안이 많다. 하여 행정 편의주의가 감춰져 있는 ‘정부입법’이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국민과 더 밀접한 정당이나 의원들이 국민 체감에 맞는 입법을 많이 하도록 변화가 필요하다.

셋째, 법원이나 헌법재판소를 통한 시행령의 위헌성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현행은 사법부만이 위헌 심사를 담당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입법과 행정입법을 담당하는 주체인 국회나 정부 모두 사법부 심판을 받는 걸 꺼려하고 있다. 판결에 따라 큰 부담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과 시행령의 관계를 모두 똑같은 잣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따라서 앞으로는 사법부의 판결 활성화와 합리적인 국회법 개정을 통해 ‘시행령’의 위헌 논란이 마무리되도록 해야 한다.

정치권은 현재 국회의장단 선출, 법사위원장 선임, 상임위원장 배분 등 21대 후반기 원구성을 위한 여야협상이 활발히 진행 중에 있다. 또 2015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야당인 민주당이 170석을 가진 다수당이다. 이번에 제출된 국회법 개정안은 두 정당 간에 법사위원장 선임 문제나 상임위원장 배분과 연결하여 서로 주고받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행정입법 논쟁은 이번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조정과 타협을 하지 못하면 파국을 가져올 수 있다는 과거의 사례를 지켜본 만큼 확실히 결론을 내렸으면 한다.

김 성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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