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벗 삼아 살아온 칠발도 등대지기의 슬픈 노래

철새 벗 삼아 살아온 칠발도 등대지기의 슬픈 노래

  • 기자명 박상건 기자
  • 입력 2020.05.2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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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87)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면 칠발도 등대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칠발도는 신안군 비금면 고서리에 속한 섬이다. 비금도는 해방 직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천일염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사람과 돈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비금도(飛禽島)는 새가 날아가는 모습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호시절에는 ‘돈이 날아다니는 섬’이라는 뜻의 비금도(飛金島)로 불리기도 했다.

칠발도는 목포에서 서쪽으로 47km, 비금도에서는 서쪽으로 약 10km 해상에 위치한 무인도다. 칠발도는 섬이 7개로 보이기도 하고, 8개로 보이기도 한다는 칠팔도라는 이름에서 유래됐다. 만조 때에는 7개, 간조 때에는 8개로 보이는 바위섬이다.

칠발도 전경
칠발도 전경

칠발도 동쪽은 화산암, 서쪽은 화강암으로 형성됐고 가파른 해식애가 발달했다. 희귀조류들이 많이 서식한다. 바다제비, 슴새, 칼새, 바다쇠오리 등 칠발도 해조류 번식지가 가치가 높아 1982년 천연기념물 제332호 지정됐다. 2월부터 11월까지 바다제비 바다쇠오리 슴새 등 수많은 희귀 바다철새들이 집단으로 번식한다.

이곳의 풀과 나무들은 찾아드는 철새들에게는 먹이가 되고 숨을 수 있는 장소로 최적이어서 50여종 이상의 철새들이 이동하는 출발지점이며 휴식처 역할을 한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칠발도를 철새의 중간기착지이자 집단번식지로서 보전하고자 특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열악한 환경에서 폐사한 바닷새들이 2015년 약 400마리에서 2018년에는 2마리로 크게 감소했다.

현재 해양성 조류인 바다쇠오리의 국내 최대 번식지로 매년 2000여 쌍 이상이 번식 중이고 봄철 우리나라로 이동해 6월부터 10월 사이 번식하는 바다제비는 전 세계 개체군의 80% 이상이 신안군 칠발도와 가거도 인근에 위치한 구굴도에서 번식하고 있다.

국립공원공단 연구진이 2018년 첫 발견한 덤불개개비
국립공원공단 연구진이 2018년 첫 발견한 덤불개개비

칠발도에 서식하는 조류는 천적에 숨을 수 있도록 바위 틈 사이나 풀의 뿌리 밑에 굴을 파 둥지로 삼는다. 이 때 쑥, 갓, 억새, 쇠무릎 등 이 섬으로 유입된 식물이 이곳에서 자생하는 밀사초보다 크게 자라 생장을 방해하거나 뿌리번식으로 바닷새들이 둥지를 만들기 힘들게 한다.

특히 쇠무릎은 9월과 10월 갈고리 모양의 종자가 열리는 여러해살이풀로 바닷새가 둥지에 출입하는 과정에서 날개에 엉켜 붙게 되어 날개 짓을 못하게 돼 탈진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국립공원공단은 2014년부터 최근까지 유입식물을 집중적으로 제거하고 바닷새가 바위틈 사이와 식물 뿌리 아래에 안정적으로 둥지를 틀 수 있도록 자생식물인 밀사초를 심어 서식환경을 복원하고 있다.

최근 연구진이 칠발도 생물자원 모니터링 중에 미기록종 ‘덤불개개비(가칭)’를 발견했다. 덤불개개비(학명: Acrocephalus dumetorum)는 개개비과의 크기 12cm 정도의 소형 조류로 유럽 동부인 핀란드 남부부터 중앙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 일대, 시베리아까지 번식하며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등지에서 월동한다.

대부분 덤불속 은밀한 곳에서 움직이며 크기가 작고 외관상 깃색이 단조롭기 때문에 종 구분이 까다롭다. 덤불개개비가 속하는 개개비과속 조류는 세계적으로 43종이 분포하며 국내에는 개개비, 쇠개개비, 북방쇠개개비, 우수리개개비, 풀쇠개개비 등 5종이 서식한다.

이 새는 주로 작은 관목, 하천 인근의 낙엽수림, 초본식물이 풍부한 숲, 숲 가장자리 등 다양한 서식지에서 번식한다. 번식기는 5월 말부터 7월까지이며 마른 풀과 거미줄 등을 이용해 암컷이 컵 모양으로 둥지 짓고 한배산란수는 3-6개, 암컷과 수컷이 함께 포란하며, 포란기간은 11~14일이다.

희귀종 한 마리는 기존 분포지에서 벗어난 ‘길 잃은 새(미조)’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종’은 태풍 같은 기상변화 혹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그 종이 찾아오지 않은 곳에 돌연히 나타는 종을 말한다.

칠발도등대
칠발도등대

칠발도 정상에는 등대가 있다. 칠발도등대는 서남해상의 최대 등대로서 해상의 안전을 담당하고 있다. 1905년 석유 백열등으로 첫 불을 밝혔다. 15초마다 한 번씩 등대 불빛을 비추어 준다. 안개가 낄 경우 무신호로 섬의 위치를 알려주는데 25초 간격으로 5초 동안 나팔 소리를 울린다.

이 등대는 1943년 5월 2차 대전 때 폭격을 맞아 시설물이 완전 파괴됐다. 1945년 3월 가스등으로 가점 무인등대로 운영되다가가 1957년 7월 시설물을 원상 복귀했다. 이 때 55초 간격으로 4초 동안 불빛을 밝혔다. 등대 불빛은 105m 상공에서 비추고 등대 높이는 8.7m이다.

1970년 12월 무선전화를 설치했고 1976년 12월 전기폰 무신호를 개량했다. 1977년 10월 일반전화가 체신부에 의해 설치됐고 1979년 7월 무선전화기를 SSB 300WFH 개량했다.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근무했던 등대원들의 생활 여건은 매우 열악했다. 오래 전부터 무인도였던 탓에 사람이 거주하기에 매우 어려운 환경이었다. 칠발도등대는 지금은 무인등대로 홀로 서 있지만 2004년까지 등대원이 상주했던 유인등대였다.

칠발도등대
칠발도등대

칠발도 등대에서 근무했던 한 등대원을 만났다. 그 시절 야생초와 야생동물이 우점인 환경에서 등대원들은 온몸에 풀독을 오르기 일쑤였단다. 마실 물이 없어 빗물을 정화해서 생활했다. 등대 빛의 에너지원인 액체 축전지가 터져 한쪽 눈을 잃은 등대원도 있었다. 1998년 무렵 칠발도에서 막 홍도등대로 근무지를 한 등대원은 생활고 탓에 여태 수술을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 등대원은 영영 한쪽 눈을 잃고 살고 있다. 비바람 거세게 몰아치던 날 발전기를 돌리다가 손가락을 잃어버리기도 했던 이 등대원의 뒤안길이 어쩜 수십 년 등대원을 천직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 우리나라 등대원들의 삶과 정서를 웅변해준다.

발전기가 고장이 난 날은 조난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밤새워 홀로 손으로 등명기를 돌렸다. 눈 부상으로 병원에 드러누웠을 때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었던 간호사는 여원한 동반자가 됐다. 그런저런 그의 인생살이를 돌이키면서 그날 등대를 떠나는 그와 소주잔을 주고받으며 노래를 불렀다. 등대에서 서울로 돌아와 잊을 수 없는 그날 밤, 잊을 수 없는 그 등대원을 생각하며 한 편의 시를 지었다.

 

스물여섯 살에 칠발도 등대지기가 되었다

풀독 온몸에 올라 고요한 초원에 병들던 인연

마음의 거울처럼 밤낮으로 닦던 축전지가 터져

한쪽 눈을 잃은 등대지기

 

유일한 섬의 친구인 새들도 길을 잃어

등대 아래서 세상을 뜨곤 했다

새들의 이별도 이별이지만

고장 난 발전기를 돌리다가

한쪽 손가락 또 잃은 등대지기

 

뭍으로 가도 천상 섬이라던 등대지기가

떠난 그곳이 섬인가

그가 머문 그곳이 천상 섬이런가

괭이갈매기 고장 난 등대 위를 맴돌고

바닷길 밝히던 등대지기는 지금

한쪽 눈으로 횡단보도를 걷는 섬이다

 

- 박상건 , ‘길 잃은 등대지기’ 전문(시집 ‘포구의 아침’)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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