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동화] 장은영의 ‘내 멋대로 부대찌개’ (2)

[단편동화] 장은영의 ‘내 멋대로 부대찌개’ (2)

  • 기자명 장은영 기자
  • 입력 2019.12.06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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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장은영 기자] 결국 윤서는 햄과 라면, 승규는 두부, 건영이는 소고기, 나는 김치를 맡았다.

휴대용 가스, 냄비와 그릇 같은 건 우리 조 아이들이 골고루 나누어 가져오기로 했다.

이야기를 마친 우리 조원들이 다른 조는 어떤 요리를 하려는지 기웃거렸지만, 아이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우리 조원들도 치사하다며 절대로 가르쳐 주지 말자고 했다.

목요일 아침, 우리는 비밀 작전을 하듯 모두 교실 건물 뒤 모퉁이에 모였다. 각자 가지고 온 걸 꺼내는데 윤서가 고개를 푹 숙였다. 승규가 윤서 곁에 바짝 붙어서 요리 조리 살폈다.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사실은 햄하고 라면을 못 가져 왔어”

“뭐? 부대찌개는 햄인데 어쩌라고!”

승규의 말에 윤서가 울상을 지었다.

“엄마가 아토피 심해진다고 햄도 라면도 먹지 말래. 다른 아이들한테도 좋지 않다고 된장하고 호박만 가져가라고…”

“너 그래서 만날 긴 팔만 입고 다녔던 거야?”

승규의 눈이 동그래졌다. 윤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승규가 어쩔 줄을 몰랐다.

“미, 미안해. 난 그것도 모르고 긴팔마녀라고 놀렸으니…”

사실 나도 긴팔만 입고 다니는 윤서가 늘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승규처럼 놀린 건 아니지만 괜히 마음이 찔렸다.

“나도 소고기를 못 가져 왔는데…”

건영이의 말에 아이들이 합창을 하듯 소리를 질렀다.

“넌 또 왜?”

“소고기가 너무 비싸다고 못 사 준대. 하지만 걱정 마. 우리 누나가 다이어트 한다고 용돈 아껴서 산 닭가슴살 통조림 가져왔어”

“그깟 소고기가 얼마나 한다고?”

승규의 말에 건영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같은 동네에 사는 건영이가 할머니랑 누나랑 셋이 사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도 건영이는 몰래 가져온 통조림 때문에 누나한테 혼 좀 날 것이다. 나는 용기를 냈다.

“소고기 정말 비싸. 우리 집도 생일에나 겨우 소고기 미역국 먹어”

아이들이 건영이 편을 드는 나에게 눈을 흘겼다. 건영이가 내 얼굴을 한 번 보더니 얼굴을 폈다.

“미안해, 할머니가 아프셔서 요즘 일을 못 하시거든. 밥도 못 하시고”

나는 그제야 건영이가 급식 때마다 왜 더 달라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승규와 아이들도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마도 ‘밥을 많이 먹으니 저렇게 뚱뚱하지’라고 흉보았던 게 미안한 모양이다.

나는 어깨에 맨 가방을 내려놓고 아이들을 보았다.

“우리 가져온 거 다 내놓자”

아이들이 들고 온 것들을 꺼냈다. 나도 엄마가 싸 준 김치통을 열었다. 내 김치를 보더니 건영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강민채, 넌 왜 총각김치야? 부대찌개에는 배추김치를 넣어야 한단 말이야”

“그, 그래? 난 부대찌개를 안 먹어 봐서…”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이제 우리 조는 망했어. 어떡해!”

윤서의 말에 아이들이 아무 말도 못 했다. 재료를 잘못 가져온 나는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때 승규가 물었다.

“야, 니들 선생님이 말한 심사 기준 알아? 뭐였더라?”

“맛, 창의성, 발표 능력”

내가 손가락을 펴 보이며 말했다.

“강민채, 너 기억력 끝내 준다. 평소에는 말도 잘 안 하더니”

“쟨 한 번 보고 들은 건 다 기억해. 지난번에 우리 할머니가 잃어버린 똥폰도 찾아줬어”

건영이가 승규의 말에 끼어들었다. 나는 “아니야”라고 말하며 손사래를 쳤다.

“내 말 진짜야. 우리 할머니 말에 의하면 민채는 관찰력이 뛰어나대. 똥폰도 쟤가 우리 할머니가 간 곳들을 쭉 읊었는데 결국 그곳에서 찾았거든”

“그럼 발표는 민채한테 맡기면 되겠다. 얘들아 어때?”

승규의 말에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좋다고 했다. 안 된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아이들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항상 나서지 않고 조용히 뒷자리에만 있던 나에게는 날벼락이었다.

아이들은 가져온 재료들을 챙겨 교실로 들어갔다. 나는 벌써부터 가슴이 떨렸다.

드디어 요리 대회가 시작되었다.

“내가 닭가슴살을 찢을 테니까 니들은 된장국에 넣을 거 준비해”

데일리스포츠한국 120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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