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검찰총장의 셀프수사와 이해충돌

<김주언 칼럼> 검찰총장의 셀프수사와 이해충돌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9.11.0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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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이 고소한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고위공직자가 언론인을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한 것은 타당한가. ‘국민입막음소송’으로 볼 수는 없는가. 검찰수장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은 이해충돌에 해당하지 않는가. 권력자가 언론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을 구제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은 없는가. ‘조국 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진 검찰과 언론 두 권력기관의 갈등을 국민은 어떻게 바라볼까.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겨레신문의 의혹보도에 기자등을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겨레신문은 지난달 11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의 스폰서인 윤중천씨 별장에 들러 접대받았다’는 윤씨 진술이 나왔으나 검찰이 덮었다”고 1면톱으로 보도했다. 한겨레21 하어영기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윤중천씨의 원주별장에 들러 접대를 받았다는 윤씨의 진술이 있었고 추가조사 없이 마무리됐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하기자는 “사건에 관여된 3명이상의 취재원을 확보해 사실을 확인했다”며 “최소한 검찰이 진술을 덮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검은 “완전한 허위사실”이라며 “윤총장은 윤씨와 면식조차 없다”고 해명했다. 대검은 “검찰총장 인사검증 과정에서도 근거없는 음해에 대해 민정수석실이 검증해 사실무근으로 판단한 바 있다”며 “사전에 해당언론에 사실무근임을 충분히 설명했다. 근거없는 허위사실을 기사화한 데 즉시 엄중한 민형사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윤총장은 보도가 나간 날 취재기자와
‘보도에 관여한 성명불상자’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고소했다.   
서부지검은 직접 수사에 나섰다. 경찰이 수사하면 윤총장이 경찰에 출석해 고소인조사를 받아야 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수사는 보도의 사실여부보다는 제보자 색출에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 외부위원과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김학의사건팀 외부단원들이 반발하고 나선 이유이다. 이들은 “검찰과거사위의 조사결과에 대한 수사를 시작으로 하는 이례적 검찰수사를 즉각 중단하고 경찰에 사건을 이첩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보도내용의 사실여부는 윤씨 전화번호부와 다이어리, 면담보고서와 최종보고서에서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며 “면담보고서에 기재된 윤총장 관련 부분 사실여부나 면담보고서 작성경위는 수사대상과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총장 개인사건에 검찰 수사권과 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남용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검찰개혁에 역행하고 언론자유를 침해할 소지도 크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는 “윤총장이 검찰을 자신의 명예회복 수단쯤으로 여기는 위험한 발상을 드러냈다”고 꼬집었다.
윤총장의 고소직후 대검은 “공정한 수사를 위해 사건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명하복 체계에 속한 검사들이 수사한다는 건 결론을 정해놓고 수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검찰총장이 고소하고 부하직원들이 수사를 진행할 경우 ‘하명수사’, ‘선택적 정의’, ‘이해충돌’ 등의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고 밝혔다. 방송독립시민행동은 “상명하복 체제에서 총장이 분노를 표하는 사안에 어떻게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겠나”라고 물었다.
이번 사안이 공직자의 이해충돌에 해당한다는 판단도 나왔다. 국민권익위는 “검찰총장이 특정인을 검찰에 고소했다면 자신이 ‘수사의 대상인 개인’에 해당돼 직무관련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공무원 행동강령’ 제2조는 ‘수사대상인 개인’을 직무관련자로 규정하고 있다. 고소사건의 경우 수사대상에는 피고소인뿐 아니라 고소인도 포함된다는 판단이다. 권익위는 “공무원 행동강령에 따라 사적 이해관계 신고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공무원이 이해충돌 소지가 생길 경우 기관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대검은 공무원 행동강령 책임관인 감찰1과장에게 신고했고 총장은 사건과 관련한 보고를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해충돌 소지가 있으면 소속 기관장은 해당 공무원에게 직무참여의 일시중지와 직무재배정, 전보 등의 조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총장이 기관장이기 때문에 사건과 관련한 보고를 받지 않는 ‘셀프 직무배제’를 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상사의 눈치를 살피는 수사검사들이 어떻게 수사할 지는 명약관화하다. 사실상 수사지휘에 나선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언론단체들은 윤총장이 고소를 취하하거나 사건을 언론중재위에 넘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잘못된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언론중재위에 제소하여 반론·정정보도를 요구할 수 있다. 언론중재위의 중재가 성립되지 않을 경우 고소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법원도 이를 판결에 반영한다. 그러나 윤총장은 이를 생략했다. 권리구제방법은 다양하다. 형사고소가 아닌 정정보도청구나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도 가능하다. 많은 매체를 통해 해명보도도 이뤄졌다. 그런데도 1면에 사과기사를 게재하면 고소취하를 검토하겠다는 윤총장의 발상은 위압적이다.
고위 공직자들은 자신에 대한 비판과 비난, 또는 의혹제기, 나아가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과 언론의 비판은 폭넓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동안 권력자들은 자신을 비판하는 국민의 입을 막기 위해 명예훼손죄를 악용해왔다. ‘국민입막음 소송’(전략적 봉쇄소송)이다. 승소가능성이나 승소이익이 크지 않은데도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소송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어 정부비판을 위축시키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정권에서 국가가 수억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극히 일부만 인용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참여연대는 “현직 검찰총장과 같은 권력기관의 구성원들이 주어진 권한을 이용해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의혹 제기를 차단하거나 처벌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엔 인권위원회도 공적 인물에 대한 명예훼손 형사처벌은 최소화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언론의 고위공직자에 대한 감시활동을 최대한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20개 이상의 주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소송이 제기된 경우 원고가 승소 가능성을 사전에 입증하지 못하면 소송을 조기에 각하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법무부가 전략적 봉쇄소송을 제한하기 위한 법률안 마련에 착수했다. 국가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부당한 목적으로 소송을 남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피소자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의견표명이 소송배경이라는 점을 법원에 소명하고, 법원이 인정할 경우 소송을 기각할 수 있도록 하는 민사소송법 개정안도 국회에 발의돼 있다. 법원도 “국가는 명예훼손 피해자가 될 수 없고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성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져왔다.
“검찰총장이 언론을 고소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물쇠를 여는 것과 같다.” 언론노조의 지적이다. 오픈넷은 “공권력 개입과 형사처벌 위협은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지 않아도 검찰개혁이 화두로 떠오른 시점이다. 오보를 낸 기자의 검찰청 출입을 제한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은 검찰권력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검찰의 수장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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