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10.1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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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정말 미안해! - 2>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1학년을 맡아 개학 전 2월에 원서로 아이들을 미리 알게 되었다. 관심이 가는 지성이는 다른 반에 편성이 되어 있었다. 마침 우리 반에는 우리 고모의 아들이 있었다.

사촌 동생을 가르치기엔 너무 부담이 갔다. 고모는 은근히 자기 아들이 우리 반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지성이 담임 선생님에게 제의를 했다. 우리 사촌 동생과 지성이를 바꾸자고. (지금껏 비밀인데, 우리 고모가 이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서운해 하실까? )

상대 선생님은 유급된 지성이와 사촌동생을 선뜻 바꾸어 주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도 많이 후회되는 선택이었다.

그 때부터 지성이와 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좀 더 신경을 쓰며 나는 지성이를 다잡기 시작한 것이다.

숙제를 안 해오면 다른 아이들 보다 혹독하게 벌을 주었다. 심부름도 시키고, 조금만 잘하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평소 안쓰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그것을 관심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숙제 했니?”

퇴근 후에 놀이터에서 노는 지성이에게 자주 한 말이다. 지성이는 재미있게 놀다가도 나를 보면 슬금슬금 집으로 가곤 했다.

그 때는 그 애를 위한다고, 학습 부진아를 집에서까지 관심을 갖는다고 우쭐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나는 지성이의 아름다운 유년의 뜰을 짓밟아 버린 폭력교사였다.

신나게 놀다가 나를 발견한 지성이 기분은 어땠을까?

신나게 놀 수나 있었을까?

내가 정성을 다했기에 그랬을까? 1년 후, 2학년으로 올라가는 지성이는 읽기, 쓰기, 셈하기에 어느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며 기쁨을 맛보곤 했다. 그러나 지성이 입장에서 본 나는 어떤 담임이었을까? 요즘 아이들 말로 재수 없는 담임이 아니었을까?

학교뿐 아니라 집에서까지 잔소리하는 담임. 지금 생각해 보면 미안하다. 참 많이 미안하다.

다른 반에 갔더라면? 집에서만은 편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읽기 쓰기가 좀 부족하더라도 2학년 3학년 올라가면 알아지지 않았을까?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영화제목이 생각난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로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한 생각을 그 때도 할 수 있었더라면.

내가 나이 들어 가나보다. 교직 생활 중 잘 못한 것이 더 많이 생각나는 걸 보면.

얼마 전 친정에 갈 기회가 있어, 지성이의 소식을 물어봤다.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지성이네는 이미 아른 데로 이사를 갔는지 소식을 모른다고 했다.

지성아, 미안해.

그때는 그게 너를 위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잘 못 했어. 미안해. 많이많이 미안해.

<손님 온다. 마당 쓸어라-1>

“수업이 끝난 여 선생님들은 간편한 복장으로 수세미와 물걸레를 준비해서 현관 앞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80년 대 초 어느 가을날이었다.

수업이 끝난 오후, 교감 선생님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저학년 여선생님 10여명이 물걸레를 챙겨들고 현관 앞에 모였다. 교장선생님께서도 물걸레를 들고 계셨다.

그 분은, 내 29년 교직 생활 중 가장 존경했던 교장선생님이었다. 오직 어린이들만을 위해 애쓰셨던, 교육 철학이 투철한 반듯한 교장선생님이셨다.

“오늘 어린애들에게만 맡길 수 없는 화장실 청소를 여러 선생님들과 하려고 합니다. 화장실로 갑시다.”

그 시절엔 재래식 화장실이었기 때문에 하얀 사기 변기 밑마다 더깨가 낀 오물이 붙어있었다. 코를 찌르는 냄새를 맡으며 변기에 눌러 붙어 있는 똥 찌꺼기를 닦기 시작했다.

데일리스포츠한국 10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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