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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기사승인 2019.09.11  09:3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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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받아쓰기에 얽힌 이야기> - 1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70년대 중반, 섬진강변에 있는 작은 학교에 근무할 때다. 1학년을 맡았는데 학생수가 70명이 다 되었다.

학생 수는 많았지만 힘든 줄도 몰랐다.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뛰고 뒹굴었다. 농사일에 바쁜 엄마들을 대신해 강에 나가 목욕을 시키고 손톱도 깎아주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거의 문자해득이 되어 입학을 한다. 하지만 그 시절엔 자기 이름정도만 쓰는 아이가 대부분이었다.

1학년 교사들은 누구나 읽기, 쓰기, 셈하기를 제대로 가르쳐, 2학년에 올려 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었다.

가정에서의 도움을 거의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더 열심히 가르쳐야 했다. 사실 엄마들은 자기 아이들의 실력이 어떤지 관심도 없었다. 그랬기에 교사가 가정학습까지 대신해야 했다.

그러나 걸어서 1시간이나 되는 먼 거리의 아이들도 있어 나머지 공부를 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바쁜 엄마들은 도시락을 준비해 보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학교 근처의 아이들만 나머지 공부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름 열심히 했기에 보람 또한 컸다.

우리 학교에 근무하는 누나를 찾아온, 서울의 대학생이 있었다. 그 대학생이 우리 반 수업광경을 눈여겨봤던 것 같다.

“누나, 저 반 아이들은 정말 행복한 것 같아요. 신나게 공부하는 모습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우”

선배 여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는 쑥스러우면서도 기뻤다.

그러나 겨울 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잊지 못 할 일이 일어났다. 군내 받아쓰기 검사 결과 때문이다.

아이들 데리고 마냥 열심히, 행복했던 풋내기 교사였던 나. 채 50점도 되지 못하는 평균점수 앞에서 난 할 말을 잃었다. 장학사님이 날 교무실로 불렀다. 읍 소재지 중앙학교에서는 받아쓰기 평균점수가 99점이라며 호통을 쳤다. 마치 어린애를 혼내듯 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이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한 마리 작은 벌레가 되어가는 듯한 자괴감에 빠져 들어갔다.

교장실도 아닌 선생님들이 들락거리는 교무실에서 당하는 창피함. 땅이 꺼져버리길 간절히 원했다.

학교를 그만둬야 할까를 몇 번이고 망설이기도 했다. 그 때 교감선생님은 장학사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안절부절 못하셨다고 한다.

교감 선생님의 반까지 합반을 해서 가르쳤기 때문이다. 동료 교사들은 장학사의 행동이 지나쳤다고 나를 위로했다.

교감선생님을 향한 우회적인 꾸중일거라 했지만 상처 난 내 자존심은 회복되지 않았다. 웃옷에 떨어지는 눈물, 그 옷의 색깔, 까칠 거리는 재질까지 지금도 기억나는 걸 보면 상처가 그만큼 컸던 것 같다.

그 후 10년 쯤 지난 후 다른 학교에서 다시 1학년을 맡았다. 마침 그 시절에는 드문 급식 시범학교여서 오후 시간에 받아쓰기 지도를 할 수 있었다. 20명 정도의 학생 수는 그 때의 1/3도 안 되었다. 예전의 그 상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받아쓰기에 한 층 열을 올려 지도를 했다. 짝꿍끼리 둘 다 잘해야 한다고, 시간만 나면 서로 받아쓰기 문제를 내어 연습을 하게 했다. 다른 학교에 뒤떨어지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드디어 시작 된 군내 받아쓰기 평가.

“달 달 무슨 달.”

장학사님이 문제를 부르자마자 아이들이 입을 열었다.

“그 다음은 쟁반같이 둥근 달이죠?”

장학사님 눈이 똥그래졌다. 문장의 앞부분을 부르면 아이들은 뒷부분을 앵무새처럼 미리서 말해버렸다.

평가가 끝나고 장학사님이 칠판에 정답을 썼다. 그러자 아이들이 또박또박 말했다.

“1번, 가운데 반점이 빠졌어요. 3번, 그건 온점이 아니라 느낌표가 맞아요. 9번, 물음표도 빠졌다고요”

1학년 꼬맹이들의 야무진 지적에 장학사님이 입을 벌렸다.

“이렇게 똘똘한 녀석들은 처음이네요”

교장선생님 앞에서 칭찬을 늘어지게 하는 장학사님. 그러나 예전의 충격 못지않은 사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데일리스포츠한국 0911일자

서성자 기자 newstrue@dailysportshankook.com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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